제 8회 세연회전
세연회전 경자년 새해를 맞아 세연회(洗硏會)가 여덟 번째 회원전 갖게 됐다. 세연회는 죽림 정웅표 선생을 사사하는 서우들의 모임이며 서예에 대한 열정으로 쉼 없이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전시는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1월 9일(목)부터 15일(수요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전시모습전시모습세연회 회원 일동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정진하며 ‘항상 공부에 힘쓰고, 속됨을 경계하며, 남에게 보임으로써 자신이 가는 길을 점검해야한다‘고 강조하시는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전하였다. 전시모습전시모습죽림 정웅표 선생은 이날 오픈식에서 “억지로 잘 쓰려하지 말고 자연에, 붓에, 종이에, 또는 쓰고자하는 내용에 맡기면 그동안 수련된 것이 적절히 아름답고 훌륭하게 표현될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하기 위한 수련은 항상 열심히 하는 것이 좋다.”라고 회원들에게 글씨를 쓰는 사람의 마음과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현실적인 조언들을 주며 큰 가르침을 전하였다. 전시모습전시모습이번 제 8회 세연회전은 죽림 정웅표 선생의 지도 아래 총 20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전시 작품은 백악미술관 1, 2층을 풍성하게 메웠으며 개개인마다의 특성과 개성이 담긴 작품들로 가득 찬 전시를 관람 할 수 있다.권영식作원명환作원순석作이순규作붓을 사랑하고 먹 향을 사랑하는 회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이번 8회 세연회전을 통해 더 발전하고, 또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오래도록 나누며 세연회가 더욱 성장하기를 바란다. 전시는 15일(수)까지 백악미술관에서 진행된다. 2020. 1. 10수습기자 정혜란 <전시정보>제 8회 세연회전전시기간 : 2020. 1. 9(목) ~ 1. 15(수)전시장소 : 백악미술관초대일시 : 2020. 1. 9(목) 오후 5시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문의 : 010-2252-3009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
2020년도 한해를 서울 - 제주 - 예산 - 과천으로 전국 순회하는 <추사귀국전>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1월 18일(토)부터 3월 1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초문인의 대화展>을 개최한다.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다.김정희金正喜(1786~1856) <판전(板殿)>김정희金正喜(1786~1856) <유희삼매(游戏三昧)> 등 「완당집고첩(阮堂执告帖)」이 전시는 2019년 6월 18일부터 8월 23일까지 개최된 동명(同名)의 전시를 한국에서 다시 개최하는 것이며,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를 마치면 제주, 예산, 과천에서 1년 동안 순회 개최된다. 김정희金正喜(1786~1856) <계산무진(谿山無盡)> 지난 중국 전시에서는 30여만 명이 관람하는 등 중국 대중과 학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장은 국내 공공기관의 호응으로 이어져 지난해 9월 예술의전당, 과천시(김종천 시장), 예산군(황선봉 군수),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고길림 본부장)는 ‘글로벌 추사 콘텐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추사귀국전>은 그 양해각서에 따른 첫 번째 결실이라 할 수 있다.김정희金正喜(1786~1856) <도덕신선(道德神僊)>김정희金正喜(1786~1856) <향조암란(香祖庵蘭) 「난묵합벽첩(蘭墨合壁帖)」><추사귀국전>을 개최하는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은 “21세기 중국에서 확인된 19세기 동아시아 세계인(世界人) 추사 선생의 학예성과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대중들이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2020. 1. 13글씨21 편집실 <전시정보><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전시기간 : 1. 18(토) ~ 3. 15(일)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7시 (입장마감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전시장소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 전관문의 및 예매 : 예술의 전당 www.sac.or.kr / 02-580-1300
2019
한국서예가협회 정기총회 한국서예가협회(회장 송종관)는 지난 1월 9일(목)에 2019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전체회원 192명중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정기총회 모습한국서예가협회는 1964년 시암 배길기, 검여 유희강, 일중 김충현 등이 논의하여 1965년 4월에 생겨났다. 초대 임원 명단은 대표위원 배길기, 상임위원 민태식, 박세림, 김용제, 원충희, 조영준, 이기우, 유희강, 김윤중, 김충현, 사무위원 배종승, 김응현, 감사 장인식 박병규, 위원에 홍진표, 오제봉, 현중화, 박심, 서동균, 최현주, 강창원, 류인식, 김효수, 정소연으로 결성 되었다.제54회 한국서예가협회전 모습 위의 인물들은 역사적으로 한국 서예사에 위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까지도 후학들에게 큰 모범이 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서예가협회는 역사에 걸맞는 행보로 지난 2019년에는 신입회원 90여명을 영입하며 변화를 추구했다. 제54회 한국서예가협회전 모습 제54회 한국서예가협회전 모습 올해 2020년은 한국서예가회원전이 55회로 특별한 해를 맞이하여, 오는 8월말 서울에서 1차 전시를, 대전에서 2차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회비를 하향 조정했다. 제54회 한국서예가협회전 모습 송종관 회장은 “경자년 새해에도 항상 좋은 일들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회원 상호간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좋은 단체로 거듭날 수 있게 다함께 노력합시다.”라고 말했다. 2020. 1. 14글씨21 편집실
2020학년도 전기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교육자과정 신입생 모집 창의적인 노력을 통해 전문교육을 선도하는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서예문인화교육자과정에 신입생 모집을 공고했다.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은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평생학습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자 “전문교육자과정”을 설치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평생교육을 주도해 나갈 교육자들을 선도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서예문인화교육자과정은 서예문인화 분야에서 교육을 담당했던 경험을 극대화하고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교과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미술교육 전반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높이고 구체적인 서예문인화교육 프로그램과 교수법 등 실제를 다루어 보게 함으로써 서예문인화교육 지도자로서의 전문성을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 교수진에는 김찬호 교수 외 23명의 전문 교·강사가 있으며, 교육 내용을 특강 형태로 진행한다. 또 서예문인화 이론을 심포지움과 그룹스더디를 통해 심층적으로 진행하며 교육대학원 교육자과정 논총에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 학기 중 중국서예계 시찰 및 수료시 작품전시회를 실시하며 학기당 1회 작품 창작을 위한 시문학 행사를 개최한다.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은 “전문교육자과정”을 통해 교육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양질의 교육이 펼쳐질 수 있도록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교육자로 준비시키고 양성해 나가는데 힘쓰고 있다. 2020학년도 전기 1차 접수는 1월 6일부터 1월 17일까지, 2차 접수는 2월 3일부터 2월 14일까지이다. 면접시험은 1월 18일(1차)과 2월 15일(2차)에 각각 예정되어있다. 합격자발표 및 등록금 고지서 출력은 본교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전형료는 4만원이다. 2020. 1. 14글씨21 편집실
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1주년 및 문화대상 시상식
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1주년 및 문화대상 시상식 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1주년을 맞이하여 1월 16일(목) 오후 3시에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새로운 10주년을 향한 첫걸음, 창간 11주년 맞아 수상 분야 늘려 각 장르에서 적격자 8명을 선정했다.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공연예술, 학술),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미술-서예), 장주원 옥공예 무형문화재(공예), 지연희 작가(문학), 이함춘 라메르에릴 이사장(글로벌),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메세나),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문화기획/비평), 이제훈 강동문화재단 대표(문화운동) 총 문화대상 8인이 수상하였다.서울문화투데이는 11년 전 대한민국 문화예술생태계의 토양을 가꿔 ‘문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소명감으로 창간해 지금껏 문화예술정론지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해왔다.해를 거듭할수록 국내 문화예술인들의 실력은 향상되고 있으며 분야를 막론하고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환경 역시 그럴까. 불모지 같은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묵묵히, 숭고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창간과 함께 <서울문화투데이>는 매년 문화예술계 발전에 기여 및 헌신한 문화예술인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업적과 노고를 치하하고자 문화대상을 수여해오고 있다. 문화대상 미술-서예 분야 수상자 김양동 교수는(계명대 석좌교수)는 서예와 전각의 대가 故이기우(李基雨, 1921~1993) 선생에게 전각과 서예를 사사했다. 30여 간 교직에 몸담으며 서예·전각가로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김 교수는 전통문화 계승이 인간성 회복의 기초라고 여기며, 대학에 서예과 개설이 급선무임을 일찍이 깨달았다. 이에 김 교수는 1980년대 초부터 대학 서예과 설립 운동의 주도자로 온 힘을 쏟았고 1989년 국내 최초로 원광대학교에 서예과가 생기는데 기여했다. 이어 4~5개 대학에서 서예과가 신설되며, ‘대학 서예 시대’를 여는 성과를 거뒀다.김양동 교수는 공립중고교국어교사 ·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 전임강사 · 북경대학교 서법연구원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계명대학교 미술대 학장을 거쳐 현재 같은 학교 석좌교수로 있다.또한 김 교수는 오래전부터 고대문화의 원형 탐구에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그는 서예와 전각 작품에 신석기시대 토기 표면에 새겨진 빗살무늬를 한국미의 원형으로 형상화했다. 사방을 비추는 빛살처럼 서예·전각·회화를 융합해 한 화폭에 담았다. 그의 작품은 경계를 허무는 작업으로 한국식 비빔밥과 같은 고유색 짙은 작품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 김양동 교수는 이화아트갤러리에서 <한국전각 정예작가 21인 초대전>(2018)에 찬조출품 하였으며 중국 안휘성 중국미술관에서 <제1회 중국서법국제요청전>(2018) 등을 다양한 전시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수많은 국내 기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 · 필라델피아뮤지엄에 소장돼 있다. 그의 공적은 높게 평가돼 2008년 대통령 훈장인 ‘황조근정훈장’ (제15123호)을 받았고, 최근 석재 서병오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석재문화상’ (2017)을 수상했다. 문화예술계를 지탱해온 이런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대한민국의 문화의 꽃이 이곳저곳에서 활짝 피었음이 증명되길 소망하며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이 조금이나마 각 문화예술인들이 행한 일의 의미와 영향, 그리고 무엇보다 ‘가치’를 공유하고 전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0. 1. 17글씨21 편집실<시상식>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1주년 및 문화대상일시 : 1. 16(목) 오후3시장소 :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문의 : 070)8244-5114
사단법인 갈물한글서회
제37차 정기총회 개최 (사)갈물한글서회가 2020년 1월 7일(화) 오전 11시 AW컨벤션센터에서 제37차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정기총회에는 회원 371명과 고문변호사가 참석하였다. (사)갈물한글서회는 1958년 고 갈물 이철경 선생이 창단하고 현재 7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정옥 회장이 이끈 ‘제58회 갈물한글서회전’은 역대 최다 인원인 551명이 참여하여 성공적인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여러 회원들의 활발한 활동들은 갈물한글서회가 발전해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제20대 회장 지송 이정옥또한 운영을 위해 협력과 봉사를 아끼지 않은 고문과 이사, 임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며 총회가 진행되었다. 2019년도 사업경과 및 회계, 2020년 사업계획, 예산안을 발표 및 승인하였다. 특히 이번 총회의 중요안건인 ‘(사)갈물한글서회 운영규칙개정안’과 ‘징계위원회규정 신설안’에 대해 개정하게 된 의의와 내용설명이 있었으며, 질의응답 후 이의 없이 통과되었다. 제21대 회장 박옥 최재연제21대 갈물한글서회 회장으로 단독 출마한 박옥 최재연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감사에 꽃뫼 고인숙, 채운 기혜경이 선출되었다. 신임 최재연 회장은 ‘갈물회는 갈물 이철경, 꽃뜰 이미경 두 분 선생님을 뿌리로 둔 무성한 나무라 생각한다. 다양한 공부를 하되 궁체의 정체성을 보존해야한다. 서로의 스승을 존경하고 동료 후배를 존중해주는 문화를 만들어 갈물한글서회가 회원들의 자랑이 되는 단체가 되는데 힘을 보태겠다.’라고 갈물한글서회의 활성화를 위하여 마지막 봉사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정관과 운영규칙에 의거하여 (사)갈물한글서회의 임원을 겸임할 이사 10인을 신임회장과 고문들의 협의로 선정하고, 이후 변경사항에 한에 회장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며 정기총회를 마쳤다. 2020. 1. 17글씨21 편집실
訃告
‘호남 서예계의 맥’ - 학정 이돈흥 선생 별세한국서예사에 큰 획을 그은 학정 이돈흥 선생이 지난 18일 오전 1시45분 별세했다. 향년 74세이다. 전남 담양 출생 학정 이돈흥 선생은 만 20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송곡 안규동 선생을 찾아가 서예에 입문했다. 동국진체의 맥을 이은 서예가이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동국진체와 중국 고금의 서체를 조화시킨 글씨체를 완성하는데 일생을 바친 학정 선생의 서예 철학은 “배우고 익힌 뒤, 격을 깨뜨리고, 완전한 자유를 얻으면 원칙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수(守)·파(破)·이(離)’로 집약된다. 고 학정 선생은 생전에 한국미술협회 고문, 광주 미술협회 회장, 국제서예가협회 회장,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부이사장 등을 지냈고, 학정연우서회와 학정서예연구원 등을 설립해 작품 활동과 후학양성을 이어왔다. 그동안 학정 선생에게 배운 제자들은 1만 여명에 이른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원교 이광사과 추사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학정체’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이뤘다. 20여 년 전 한·중·일 서예인들이 창립한 국제서예가협회 공동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베이징대학교 서법예술연구소 객좌교수와 주한 중국대사관 중국문화원 고문으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문화교류에 크게 이바지했다. 학정 선생의 작품은 국립 5·18 민주묘지 민주의 문, 광주 5·18 민주광장 민주의 종각 등과 화엄사, 송광사 대웅전, 대흥사, 불국사, 범어사 등 전국 사찰에 걸려있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국민통합’이라고 적은 친필 휘호를 선물하기도했다. 고인은 식도암 지병으로 광주 성요한병원에서 투병하였으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발인식은 20일 조선대병원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2020. 1. 21글씨21 편집실 弔 辭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 권인호 哭挽 삭풍이 불어대는 2020년의 1월에 한국서단의 큰 별이 지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의 서예가로, 또 한 사람의 선생으로 너무나 큰 족적을 남기신 학정 이돈흥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생전에 선생이 서예가로서 이룬 작품세계는 현대 한국서예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선생이 서예가로 활동을 시작하던 초창기의 한국서예는 한비(漢碑)와 위비(魏碑)를 주종으로 하는 비파(碑派) 일색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에 홀연히 왕탁(王鐸)과 부산(傅山)으로 통칭되는 명⋅청시대의 방일(放逸)한 행초서를 수용하여 자신만의 예술정신과 성실함으로 일가를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한국서단에 새로운 품격을 보여줌으로써 한⋅위의 비(碑)에 매몰되어있던 한국의 서예가들에게 새로운 물줄기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2018, 중과광주, 67x34cm선생의 행초서는 중국의 그 어떤 작가와도 구별되어지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심지어 왕탁과 부산을 수용하였음에도 두 대사(大師)와는 확연히 구별되어지는 조형언어와 획을 사용하였으니 선생의 뛰어난 서예적 역량은 바다 건너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현자들과 교분을 나누기에 이르렀습니다. 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2017, 월성스님 시, 35x25cm선생의 뛰어난 실력과 인품은 호남은 물론이고, 멀리서부터 책상을 짊어지고 스승으로 모시고자 수많은 제자들이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제자들 중에 지금의 한국서예를 이끌고 있는 제자가 수없이 많아 선생의 문하는 가히 명문중의 명문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2014, 문심무괴, 116x23cm이렇게 모인 제자들을 훈도하면서 선생은 일정한 공부가 된 제자들에게는 자신만의 세계를 열도록 종용하였으며, 또 그러한 제자를 지극히 아끼셨습니다. 사도(師道)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행하신 분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은 서단과 후학을 위한 일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셨습니다. 한국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을 역임하시면서 당시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심사제도 개선에도 노력하였으며,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온힘을 다하셨습니다.故 학정 이돈흥 선생 작품선생은 후배나 후학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선배이자 선생이었습니다. 젊은 서예가들의 전시장에는 어김없이 찾아주셨고, 애정 어린 격려로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이런 따뜻하고 정감듬뿍 담긴 전라도 사투리는 서예만 바라보고 내달리는 많은 서예학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선생은 다시 못 올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분을 잃은게 아니라 한국 현대서예사가 꼭 기억해야 할 이 시대의 서예가, 그리고 언제나 인자하고 따뜻한 선생님을 잃었습니다. 아! 선생의 영전에 뜨거운 눈물과 감사의 인사를 바칩니다. 한국 2020년 1월 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 권인호 哭挽
울산미술협회 회장에 김봉석 전 부회장 당선
한국미술협회 울산시지회는 최근 열린 20대 회장 선거에서 김봉석 전 부회장이 당선되었다고 밝혔다. 이번 회장 선거에서는 유권자 460명 중 398명이 참여하였으며, 김 전 부회장은 250표를 얻어 148표를 받은 김동인 전 수석부회장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한국미술협회 울산미술협회 김봉석 신임회장러닝메이트로 박현율(한국화,울산미술협회 전 감사)수석부회장, 지민경(서양화 울산미술협회 전 사무국장)부회장이 함께 했다. 김봉석 신임회장은 모든 회원에게 창작과 기획 활동 기회균등을 보장, 11개 분과 간 갈등해소와 교류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한 울산지역 미술인을 위한 서울 지역 갤러리 개관, 울산시립미술관 정책에 회원 목소리 반영 등을 약속했다. 김 신임 회장은 계명대학교 서예과, 동 대학 예술대학원 미술학과(서예전공)를 졸업했으며, 울산미술협회 이사, 사무차장, 분과위원장, 부회장 등을 지냈다. 그는 “인습과 관습에 굳어진 미술협회를 정관에 근거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또 “궁극적으로는 울산미술협회가 한국미술협회 산하 16개 지회 중 새로운 사업모델이 되는, 그래서 벤치마킹하는 지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임기는 20년 3월 1일부터 3년이다. 2020. 1. 21글씨21 편집실
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 정기총회 개최
제2대 회장에 만당 최견 취임지난 1월 18일(토) 동해대덕연수원에서 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 2020년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열린 총회에서는 제2대 회장으로 만당 최견 씨를 선임하였다. 감사에는 유경희, 이성국씨가 선출되었다. 제2대 만당 최견 신임회장신임 회장과 함께 3년의 임기동안 함께 할 임원으로는 부회장에 김종곤, 리홍재, 박종갑, 서주선, 조성필, 이범준, 현익주 씨가 선정 되었고, 운영위원으로는 김성우, 류재학, 박남정, 서혜경, 안홍표, 윤재혁, 정숙모, 황태현 씨가 선정되었다. 사무국장에는 최다원씨가 중책을 맡았다. 명예회장에는 남전 염정모 전회장, 자문위원에 심재덕, 박문환 씨가 추대되었다. 제2대 신임회장 당선증 수여, 선거관리위원과 최견 회장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는 한국서단의 화합과 한국서예의 진흥을 위하여 당시 한국서예협회, 한국미술협회, 한국서가협회 3단체의 초대작가 중에서 뜻을 함께하는 이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2004년에 본회를 설립, 2005년에 첫 전시를 개최한 이래 현재까지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며 15회의 전시를 개최하며 서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현재 회원은 대부분 한국서단의 중진들로서 약 100여명에 이르고 있다. 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 회원 단체사진최견 신임 회장은 협회 발전을 위한 향후 추진 계획으로 협회의 사단법인화, 법정화 단체 등을 추진하고 서단의 새로운 인물 영입과 육성, 회원 상호간의 화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최견 회장은 그동안 한국서예협회 이사, 서협서울시지회장, 한국서예신문사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서화교육원 원장으로 인문학 강의와 집필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2020. 1. 29글씨21 편집실
<특집>
대륙을 이끈 서법가들引领大陆的书法家们 - 상해 · 항주지난 <대륙을 이끈 서법가들(북경)>에서 중국의 수도이자 전통서법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북경을 찾아가 뚜렷한 자기 색깔을 지닌 네 분의 중견작가(석개(石開)/후캉메이(胡抗美)/증래덕(曾來德)/이강전(李刚田)들을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과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일궈낸 현대서법계의 역정과 진화의 모습을 육성을 통해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우리는 이 기획인터뷰를 통해 우리 서예계에 반추해보고자 한다.이번 <대륙을 이끈 서법가들(상해•항주)>은 중국 남방의 서화예술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상해와 항주를 찾았다. 서예 전방의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3인의 서법가들을 만나 그들의 예술세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 세 번째 순서로 진진렴 선생을 찾았다.인터뷰는 글씨21의 성인근 편집주간이 이어갔으며, 통역은 절강대학 임여 교수가 맡아주었다. 2020. 1. 29글씨21 편집실Q. 서법의 길에 몸을 담게 된 이유어릴 적 학교에 다닐 때 가장 먼저 배운 것들은 회화와 전각이었습니다. 서예는 그저 스스로 좋아하며 공부하였는데 중국미술학원에 입학하고부터는 매우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한 기점을 얘기하라고 한다면, 미술학원의 여러 유명하신 예를 들면 루웨이자오(陸維釗)선생, 사멍하이(沙孟海)선생, 쭈러산(諸樂三)선생 같은 명사들을 만나면서부터 그저 모필로 쓰는 글씨를 떠나 전문적인 서예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서법의 실기와 이론을 함께 실천하게 된 계기가장 이른 기회는 당연히 미술학원에 들어가서 전문적 서예공부를 하면서부터입니다. 전문적 서예공부라면 당연히 이론이 있기 마련이며 이론은 창작과 병행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도 창작실천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학술연구 쪽으로 점점 옮겨가게 됩니다. 대학이므로 학술적 연구를 하게 마련이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이론연구는 창작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연구는 예를 들면 서법의 정의라든가 관념, 그리고 미래서법의 선택, 다시 말해 서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등 아주 많은데, 여기서 느낀 것은 이론적 수준을 가진 예술가와 그저 글씨를 쓰기만 하는 예술가 사이에는 매우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Q. 『中國書法發展史(중국서법발전사)』를 쓰게 된 계기와 이 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이 책은 제가 수업할 때 강의한 내용을 녹음했다가 학생이 다시 정리한 책입니다. 이 때 제가 강의했던 내용은 일반적인 서법사의 강의와 현저히 다릅니다. 그때 당시에는 보통 서법사의 책들이 인물의 소개나 또는 매우 간단한 지식들의 소개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하는 강의가 이런 간단한 지식들만 소개한다면 학생들은 불만이 많겠죠..선생님도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이론은 각 시대에 맞는 그 시대의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한나라부터 수당, 송원명청의 시대적 정의가 각각 다릅니다. 이 정의는 당시 저에게 서법사에 관하여 어떤 관념 또는 학술적 시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즉 특별한 시각으로 서법사를 보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원래부터 있었던 지식류나 상식류의 서법사 책보다 더 재미가 있습니다. 이는 나중 저의 서법사 연구의 특징으로 형성되어 가는데 반드시 역사의 지식, 현상, 인물속에서 그 의의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자료만을 소개하려면 그 의의를 명확히 해석해야할 필요가 없겠지만, 저희들의 서법사 연구 방법에서는 이 의의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Q. 1999년, 예술과학성과상으로 중국서법최고상인 ‘兰亭奖(난정장)·理论奖(이론장)’을 수상했는데, 당시 연구 주제와 수상의 감회에 대해이론상은 문화부의 상이 아닙니다. 이 이론상은 중국문련(文聯)이 수여한 상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문화부의 상인데 예술학과(藝術學科)상입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른 상이지만 저로서는 다 성공한 셈입니다. 왜냐면 당시에 서른 남짓, 마흔이 안 될 나이였는데, 당시 저보다 연령이 많이 높은 전문가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연구를 하였지요.. 저도 연구를 했고요, 그러나 저의 연구 방법은 남들과 달랐습니다. 저의 연구 방법은 방금 말씀드렸듯이 특히 그 의의를 찾는데 치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서법 이론계에서는 대부분 지식의 전파, 고증이나 진위들을 연구하였고 저희처럼 학문적이며 사변적 이론의 연구자들은 매우 적었습니다. 최종 저희들이 내놓은 연구 성과를 가지고 문화부, 문련, 서법가협회의 상을 받게 된 데는 사실 저희들도 매우 의외였습니다. 당시의 이론연구들 속에 이 연구는 매우 개별적이었으며 매우 희소하였습니다. 대부분은 이런 연구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지요. 이것은 어떻게 보면 중국의 개혁개방이 당시의 저희들에게 좋은 기회를 준 것입니다. 모두에게 별로 이해되지도 않으며 익숙하지도 않은 이런 연구가 최종 높은 상을 받게 된 것은 사실 매우 쉽지 않은 일입니다. Q. 학원파를 설립하게 된 계기와 성과 학원파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많은 서법가들로부터 이러한 구상이야말로 매우 전망이 있는 발전방향이라 느끼고 있기 때문이죠..그러나 당시에는 사람들이 별로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반대하는 소리도 많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당시 학원파를 제창할 때는 많은 다른 서법가들의 입장과 달랐습니다. 왜냐면 당시 대부분의 서법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들은 서법은 \'과연 무엇인가\', \'역사상 무엇들이 있었던가\', \'고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또 무엇인가\'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당시 학원파의 방식을 통하여 연구한 것은 \'왜 이런가?\', \'이후에 이것은 또 어떻게 되어가는가?\' 하는 것들인데 이는 각도가 완전히 다르지요. 하나는 즉, \'이미 있는데 이것은 무엇이며 무엇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미 하나가 있는 이것은 왜 이런가?\', \'다른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그리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는 연구의 각도에서 보자면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20년이 흐른 뒤 다시 돌아와 오늘을 보았을 때, 마침 이러한 각도로 연구할 수 있는 오늘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바로 이 이십 년간을 인도하는 위치에 있을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모두가 이 방식대로 해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들이 이 학원파를 연구할 때 우리는 고대서법의 유형 이외에 오늘날의 새로운 서법유형이 찾아지기를 크게 희망했습니다. 고대서법은 이미 오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이는 하나의 유형입니다. 오늘날 서법은 다른 유형을 가질 수 없는가...이에 당시 학원파는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는 \'주제선행(主題先行)\', 둘째는 \'형식지상(形式至上)\', 셋째는 \'기술본위(技術本位)\'였습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오늘의 서법예술창작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과거 고전서법의 붓글씨와 분명이 구별되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이는 오늘날 이 시대 서법이 마땅히 가져야 할 원소들입니다. 다시 보충을 하나 하자면 저의 40년간 서법 연구속에서 사람들은 저의 서법연구에 관한 성과를 여러 가지 얘기하겠지만 저 개인적인 견해로는 학원파 서법의 탐색이 제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학원파는 사상적으로 사실상 이 시대 서법의 프레임을 새로 설립해 놓은 것입니다. 이런 프레임이 있음으로 인해서 사상관념과 방법론상 개척의 능력이 생기게 되며, 이런 사유를 사용하여 다시 고전을 보았을 때, 즉 원래 우리가 이해했던 고전에서 학원파의 입장으로 다시 본 고전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해독방식이며 이로써 신첩학(新帖學)이나 신비학(新碑學)에 대해서도 저희들은 많은 새로운 관념들을 제기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첩학에 관하여 우리들이 특별히 주의했던 것은, 원래 알고 있던 조맹부의 원명청시대 서사법에서 위진남북조때의 즉, 왕희지 당시의 법을 써야한다는 신첩학을 제창하였습니다. 신비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청대의 서법가들을 포함하여 당시의 많은 서법가들 중 특히 조지겸이나 포세신등처럼 첩의 필법으로 비를 썼는데, 신비학에서는 반드시 석각의 방법으로 비를 써야한다고 매우 분명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즉 행초서를 쓰는 법으로 비를 쓰거나 모필의 방법으로 비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초성추종(草聖追踵)\'으로 위비, 당해, 해서 등에 모두 이러한 새로운 해석방법들을 제창하여 오늘날 창신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 사상적 운동이 되고 있습니다. Q. 2009년 북경 중국미술관에서 ‘意义追寻(의미를 찾아서)’전시를 개최하였는데, 일반적인 서예전과 달리 세부주제로 나누어 진행한 이유는?2009년은 제게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한해입니다. 과 우리들이 서법작품을 볼 때는 숙련이 잘 된 아름다운 모필 글씨를 보는 것이지요. 당연 이 역시 서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것을 서법예술이라 하기는 많은 부분들에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다 그랬지요..비교적 많이 보이는 것은 개인의 똑같은 자기의 서법풍격으로 모든 시문들을 적은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송사, 한부 혹은 위진의 문장 등을 썼었지요. 그런데 대부분 이런 현상들에 대하여 크게 해괴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법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전시를 통해 저는 스스로 추궁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추궁의 뜻은 먼저 첫 번째 네 가지로 \'방서(榜書)\', \'간독(簡牘)\', \'초성(草聖)\', \'고예(古隸)\'였습니다. 이 네 가지는 한 서법가의 풍격이 하나의 유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백여 점 작품이 전시중인데 모두가 하나의 풍격이라면 이 전시는 전혀 볼거리가 없습니다. 관중도 좋아할 리 없을 테지요. 따라서 작가는 어떤 장소에서든 각각 다른 풍격 즉 고예, 간독, 초성, 방서 등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열독서법(閱讀書法)\'인데, 이 부분은 관상의 목적에서가 아니라 문사를 전달한다는 의미로 ‘비첩고증록(碑帖考證錄)’, \'금석제식록(金石題識錄)’, ‘서령독사록(西泠讀史錄)’, \'명사방학록(名師訪學錄)’ 으로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시에서는 크게 중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서법가들이 쓴 내용은 잘 아는 시문, 예를 들면 이백의 시나 두보 시 또는 백거이의 시이지요. 관객은 또 무엇을 썼는가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관심이 있는 것은 쓴 것이 잘 썼느냐 못썼느냐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전시를 하면서 관중들이 저의 전시를 반드시 읽도록 하였습니다.따라서 \'열독서법\'이라 하였고 이에 관한 각종 내용들을 만들었지요. 이것은 당시 매우 개혁적인 것이라 대부분 사람들이 익숙지 않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오늘날 이 시대와 매우 적합한 일이 되었습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꼭 십년이 지났는데 지금 중국서법계에서는 이미 이 열독과 문사내용에 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 년 이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요...09년에 가졌던 \'의의추심(意義追尋)\'의 전시는 제 개인적으로 전시를 통하여 관상에 관한 것을 가장 극치로 만드는 동시에 열독도 가장 극치로 만들어야겠다고 희망했었습니다. 하나의 전시 속에 말이죠... 그때 전시는 바로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목적의 전시는 많은 서법가들로서 생각조차 하지도 못한 일이었을 겁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죠. 당시 이 전시는 매우 관심을 끌었던 전시였습니다. 만약 하나 보충하라면 당시 2009년 전시는 주제가 \'의의추심\'이었는데 내용과 문사를 중히 여긴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당시 서법전람의 습관적 패턴을 개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서예전시가 대중에게 다가서고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지?사실 아까 말한 2009년 중국미술관에서 \'의의추심\' 의 주제 속 여덟 개 부제로 열린 전시는 관객들로 하여금 오랜 시간동안 전시장 안에서 끊임없이 음미하고 감상하고 끊임없이 열독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왜냐면 예전의 우리들의 전람은 대부분 전시장 안에서 한 바퀴 휙 돌고 가버립니다. 대동소이하고 잘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하며...어떤 것들은 잘 알고 있는 당시, 송사들이라 이 시들을 굳이 다시 읽어볼 필요도 없지요. 따라서 별로 볼게 없다 생각하고 그저 이 양반 글씨 잘 썼네... 하고 가버립니다. 별로 큰 흥미가 없는 것이지요. 저는 여덟 가지 부제를 달았지만 네 개는 관상 부분이며 네 개는 열독부분입니다. 즉 관중을 오래 머물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제 속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토론이 필요한 게 있습니다. 지금의 서법이 봉착한 문제는 대중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날 서법을 중시하지 않는 것 중에 주요한 것으로 꼽는 관중이 볼 줄을 모른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전시하는 서법가들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며, 개척의 공간이 없으며, 관객을 두 시간 동안 머무르게 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 모순의 초점은 대중화이든 무엇이든 관중들로 하여금 와서 보도록 연구한 것이 아니라, 보라고 제작한 작품들이 너무 간단하거나 너무 서툴거나 너무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다면 목전의 가장 시급히 개조해야할 것은 대중이 아니라 바로 전시를 개최하는 서법가입니다.---중략--- 제 생각으로는 대중들에게 작고 간단한 전시를 보여주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그러나 전문가에게 작고 간단한 전시를 와서 보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겁니다.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나의 취미를 이정도로 생각했는가 할 것입니다.즉 앞으로의 전시가 도전해야 할 것은, 전문가를 마주하여 그로 하여금 능히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Q. 기획자나 큐레이터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방금 제기하신 문제는 사실 중국 일본 한국의 서법가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한 개인의 서사의 습관이 형성된 뒤에는 모든 작품들의 풍격을 변화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우며 피치 못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한국도 이 문제를 피해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한국 친구들이 제게 작품집을 보내오기도 하는데 앞 몇 장을 보면 뒤에는 전부가 대동소이합니다. 그저 써놓은 내용만 다를 뿐이죠.. 따라서 만약 그저 모필로 쓴 글씨라는 각도에서 본다면 이는 어떻게 보면 도저히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이는 마치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 같지만 만약 이를 예술표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서법가의 기술보다 전시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람의 사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 기획자의 시야가 얼마나 광활하냐에 따라 그가 추진하는 내용도 얼마나 풍부하냐가 되겠지요. 즉 관중들이 전시를 보면서 얻은 느낌과 감상의 유쾌함이 훨씬 풍부해진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특히 서법전시의 기획이 회화나 조각 등 당대예술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서법은 기술상 큰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기획자가 중간에서 어떠한 중간교량작용을 해주지 않는다면 이런 서법 전시는 기본적으로 별로 볼게 없습니다. 좋은 기획자가 있으면 앞으로 전시는 점점 더 보기가 좋아질 것입니다. Q. 행초서의 창작 측면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선생님의 현재 행초서가 있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저는 가장 먼저 서법을 공부할 때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의 행초서입니다. 임첩을 한 것이 비교적 정통이었고 이것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초서의 미불 황정견을 공부하면서부터는 점점 흡수한 부분이 다원화 되어 갔습니다. 이 다원화속에는 민국시기의 조지겸, 포작영, 오창석 그리고 위로는 왕희지와 왕순의 백원첩등이 그 안에 있었죠.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 행초서의 울타리 안이었고 나중에는 광초를 연구하게 되는데 즉, 저의 전시항목 중 하나인 \'초성추종(草聖追踵)\'으로 모든 경전적인 광초를 분석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깨달은 바가 매우 큽니다. 또 \'위비추구(魏碑追究)\'에서 위비 석각의 도끼나 끌로 다듬은듯한 획들은 마침 행초서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며 완전히 새로운 것들입니다. 위의 두 가지를 결합하여 보태고 최근에는 청동기의 명문 즉 \'금문대전(金文大篆)\'을 공부합니다.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나면 자기의 붓끝에서 나오는 것들이 우리가 습관적으로 보아왔던 조맹부나 동기창의 행초서들, 심지어 송대의 행초서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유창함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모필안에서 나타나는 풍부함의 정도에서 송원이후의 행초서 서가들보다 변화와 언어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석각의 내용이 있으며, 광초의 내용이 있으며, 청동기의 명문을 주조한 획들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 행초서는 매우 보기가 좋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이 보기가 좋다는 말속에는 학습한 내용이 정통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위의 내용을 겸용하여 여러 가지 필세로 전이시켰음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모두가 제가 느꼈던 것처럼 체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31:08 따라서 지금 우리들이 쓰는 이 획들을 가지고 되돌아 다른 서법가들의 글씨를 비추어보면 글씨는 잘 썼는데 선의 질은 합격하지 못한 예가 많이 있습니다. Q. 학생들에게 행초서를 입문하게 하는 지도법은?입문은 역시 경전적 작품으로 출발하지만 저희들이 지도하는 과정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학생들이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보느냐 입니다. 즉 학생들의 경전적 작품에 대한 분석능력인데 만약 이것을 이해하고 안다면 언젠가는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을 모른다면 그 학생은 영원히 표현해 낼 수가 없겠지요...따라서 제가 학생을 가르칠 때 대부분 그가 고대의 법첩이나 탁본을 볼 때 어떻게 보는가에 많은 주의를 기울입니다. 학생이 그걸 보며 이해하고 안다면 그는 반드시 희망이 있습니다. Q. 예서작품에서 漢隷(한예)에 국한하지 않고, 篆書(전서)와 簡牘(간독)의 字體(자체)와 章法的(장법적) 특징까지 융합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원래 예서를 쓸 때 대부분 한대 석각의 탁본이었지만 저는 비교적 고예(古隸)를 좋아합니다. 09년 전시회 때 \'고예신운(古隸新韻)\'이란 항목이 있었는데 고대의 예서, 고박한 예서를 새로운 운치로 표현하였지요. 이 고예를 일정 동안 쓴 뒤에는 간독(簡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간독은 좋은 것 나쁜 것이 같이 섞여 있고 그 우열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이 간독을 쓰는 방식이 마침 제가 가장 즐겨 쓰는 행초의 방법과 비교적 부합합니다. 간독의 격동스런 필세가 예서 곳곳에 풍신이 깃들게 하는 매우 큰 표현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주 긴 시간에 걸쳐 간독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한 것은 한대의 간독인데 진 이전의 전국시대 간독은 필세의 격동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한대의 무위한간(武威漢簡)이나 마권만간독(馬圈灣簡牘), 거연한간(居延漢簡) 등은 매우 훌륭한 것들입니다.그것들은 위진시대의 이왕 필법을 가지고 예서의 특징을 해독한 것입니다. 당시 모두가 손으로 쓴 것들이지요...예서는 두 가지 길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고대 석각의 예서로 예를 들면 제가 비교적 중시하는 형방비(衡方碑), 서협송(西狹頌), 장천비(張遷碑) 등이 이러한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간독인데 한대의 간독이 주요하며 매우 수준 있는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 두 방면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서의 입장에서 보면 석각예서는 반드시 후중하고 고박해야 하며, 간독은 반드시 민첩하며 활발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는 한 사람의 서법가로 보았을 때 두 개의 극단이지만 절대 한쪽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Q. 전통의 올바른 계승과 이를 통합 현대화의 문제에 대해오늘날 이 사회는 매우 다원화되어있으며 현대화의 정도가 매우 빠릅니다. 따라서 서법은 당면해 있는 예술의 합법적 신분을 빨리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반드시 과거의 학술적 입장에서 보다 더 많은 예술과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예술 형식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상황아래에서는 물론 지금 전통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긴 하지만, 제 생각에는 지금 저희가 일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고대의 경전과 전통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굳게 지켜야 할 입각점입니다. 흔들려서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런 경전을 보면서 이를 해독하는 방식은 고대, 근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고대에나 근대에 요즘같이 빠른 속도의 사회적 변화가 없었습니다. 고대에 어떻게 요즘 펜글씨나 컴퓨터의 자판 인터넷 및 인공지능 등을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고대에는 없었습니다. 만약 고대의 방식으로 경전을 해독한다면 창조력이 없습니다. 또 고전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서법이 변질되고 맙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전통의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수갑을 차고 춤을 추는\'것으로 형용할 수 있습니다. 매우 부자연스럽지요. 저기도 여기도 수갑을 채워 모든 곳이 묶여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춤을 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오늘날 서법가들의 재화를 검증하는 곳이 되며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통은 반드시 굳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경전은 반드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독하는 방법은 변해야 합니다. Q. 선생님의 작품이나 책을 보고 영감을 받는 작가와 후학들에게제 인상속의 한국서법은 매우 책임감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어떻게든 잘 해서 발전시키고자 노력한 걸로 압니다. 저희는 지난 몇 년간 예술의 전당을 비롯하여 한국의 적지 않은 모임과 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심지어 저희들의 학원파도 가서 전시를 하였지요. 그때는 한국 서법이 매우 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몇 년간 조금 쇠퇴해 간 느낌이 듭니다. 활약의 정도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반적인 한국과 관련이 있으리라 보지만 예를 들면 대학에서 서예과가 없어졌는데 혹시 인재공급이 단절된 것은 아닌가...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에 한국이 만약 서법의 발전을 바란다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로 지금 많은 열정을 보이는 중국과 함께 이 시대의 서법, 즉 21세기 서법의 유형과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따라서 옛날의 활력을 되찾고 동시에 서법이 앞으로의 예술 속에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탐색해야 합니다. 한 개인이 기술적으로 글씨를 잘 쓰느냐 못쓰느냐 저는 이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누가 저의 서법에 존경심을 표시해도 저는 기본적으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시종 우리들이 가져야 할 것은 사명감으로 이 시대의 서법은 과연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후대 사람들은 또 지금 오늘의 서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물려준 것들이 좋지 못하다면 후대 사람들은 비평을 할 것이고 물려준 것이 좋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들을 찬성하고 받들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임이란 한자문화권속 중국, 한국, 일본이 공동으로 최소한 일부의 사람들이라도 반드시 이 일을 맡아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陈振濂(진진렴 chénzhènlián)1956년생(64세). 上海 출생. 호 颐斋. 서법창작,이론가, 학자형예술가. 출신학교: 浙江美術學院(現中國美術學院) 약력: 中國文聯副主席,中國書法家協會副主席,中國文藝評論家協會副主席,浙江省文聯副主席、浙江大學人文學院院長,西泠印社副社長 등. 현재: 浙江大學藝術學院院長 출판: 《中國畫形式美探究》、《書法學》、《書法美學》、《書法教育學》、《現代中國書法史》、《線條的世界—中國書法文化史》、《空間詩學導論》、《宋詞流派的美學研究》、《中國書畫篆刻品鑒》、《近代中日繪畫交流史比較研究》、《現代日本書法大典》 등 약 40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