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색전
<4인4색전> 네 명의 작가가 한 자리에 모여 서화의 다양한 매력을 한 번에 느껴볼 수 있는 <4인4색전>이 지난 20일(수) 경운동 갤러리 미래에서 열렸다. 참여 작가로는 무구 김백호, 벽초 박홍규, 매당 유혜선, 일양 정헌만이 참여하여 각자의 개성과 필체가 돋보이는 각 11점의 작품들을 출품하여 관람하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무구 김백호작가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을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서예단체총협의회 간사, (사)한국서가협회 학술분과 위원장 등을 맡으며 작품 활동 뿐 아니라 서예계의 여러 방면에서 힘쓰고 있다. 그는 변화 속에서 밝고 바름에 순응하며 사는 지혜를 빌리고자 『주역』을 보다가 마음에 와 닿는 괘의 문구를 골라 작품을 하였다고 한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들을 보면 글자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한문서예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눈에 쉽고 재밌게 관람할 수 있다. 무구 김백호 作무구 김백호 作전시장에 매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벽초 박홍규의 문인화 작품들은 그야말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매화꽃과 몽우리들은 곧 필 매화꽃에 대한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벽초 박홍규는 (사)한국서가협회 이사, 대한민국서예전람회 문인화분과 심사위원장,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초대전 출품 등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벽초 박홍규 作 벽초 박홍규 作매당 유혜선 작가는 아름다운 한글서예작품들을 출품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한글서체를 선보여 한글서예의 매력을 가감 없이 선보였다. 그는 “서예술은 지식과 품격, 끈기가 합쳐진 예술이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보통사람보다도 몇 배의 근면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한 작가의 삶이 작품에 투영 되었을 때에 비로소 작품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라고 밝히며 서예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하여 전하였다. 매당 유혜선 作매당 유혜선 作한글서체의 매력 뿐 아니라 한문서예의 다양한 매력도 느껴볼 수 있다. 일양 정헌만 작가는 평소에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두었던 문구들을 구성하여 전서, 예서, 행서, 초서, 국한혼용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작품을 대중 앞에 펼쳐 보인다는 것은 작가 내면의 세계를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행위라고 하였다. 그가 선보이는 11점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어떤 내면의 세계를 말해줄지 기대 된다. 일양 정헌만 作일양 정헌만 作4인4색전은 2월 26일(화)까지 경운동 갤러리 미래에서 진행된다.<전시정보>4인4색전기 간 : 2019. 2. 20(수) - 26(화)장 소 : 경운동 갤러리미래(02-592-4303)2019.2.22이승민기자
09클럽 10주년 묵향회원전
<09클럽 10주년 묵향회원전> (사)한국여성소비자연합에서 주최, 주관하는 신사임당행사 예능대회에서 인연을 모아 만든 2009클럽(이하 09클럽)회원들이 기해년 10주년을 맞이하여 “09클럽 10주년 묵향회원전”이 지난 20일(수)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였다.09클럽은 누구나 쉽게 모여 클럽원이 된 것이 아니라 당당히 신사임당의 날 예능대회에 참가 후 심사를 거쳐 입상하여 서예작가로 인정받은 회원들이다. 이러한 09클럽의 10년의 세월 동안 연마한 회원들의 서예에 대한 사랑과 실력이 모아진 전시이다. 09클럽 강두임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 서예인의 초석을 놓았다는 기쁨과 함께 한달 간의 교육 과정에서 신사임당 묘소참배, 도자기에 붓글씨, 그림 및 체험학습과 교수님들의 명 강의를 통해 평생 같이 할 취미를 공유한 회원님들과의 인연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밝히며 09클럽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었다. 아림 강두임 作화정 손신진 作갈뫼 안순남 作또한 “앞으로 스마트폰에 빠져 한쪽으로 치우친 어린 세대에게 서예로 감성과 예절의 가치를 가르치고 노년 세대의 선후배들에게 서예를 권장하여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한다.”라며 09클럽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청진 양애선 作만곡 유성균 作서로 살아온 환경과 나이도 다르고 각자 추구하는 서예의 길도 다르지만 10년 동안 09클럽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인 회원들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더욱 단단해지며 함께 성장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09클럽 10주년 묵향회원전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전시로 기억될 것이다.기화 이혜자 作겹내 최금옥송하 김정묵<전시정보>09클럽 10주년 묵향회원전기간 : 2019. 2. 20(수) -26(화)장소 : 인사동 한국미술관 2층2019.2.25이승민기자
화동 부윤자 서전
고전을 바탕으로 전통적 서법의 길을 걸어온 화동 부윤자 작가의 개인전이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2월20일(수)부터 26일(화)까지 진행된다. 중국 서안교통대학, 중국미술학원 서예과 등을 다닌 부윤자 작가는 제주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고 명지대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이사를 비롯 국제서법예술연합한국본부, 동방연서회, 한국서예학회 회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필묵의 길을 걸은 지 40여년 만의 첫 개인전이다. 많은 경험과 필력이 쌓인 작가인만큼 ‘첫’개인전이라는 타이틀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부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를 보면 그 동안 그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붓을 잡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배움의 즐거움과 서예에 대한 사랑으로 자연스레 쌓인 그간의 세월은 첫 개인전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부윤자 작가의 힘 있는 필체로 기품 있게 그려진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한문서예, 한글서예를 넘나들며 다양한 서체로 작품을 하여 보는 이들에게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목포대학교 고광민 도서문화연구원은 \"부윤자의 본업은 서예다. 부윤자는 서예를 여가 이용의 수단으로 대할 여유가 없다. 화동 부윤자 서전은 아마추어를 거부하고 프로를 지향한다.\"라고 전하여 이번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26일까지 진행되는 서울 전시가 끝난 후에는 그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3월 16일(토) - 21일(목)에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전시정보>화동 부윤자 서전기간 : 2019. 02.20(수) - 26(화)장소 :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제주전시기간 : 2019.03.16(토)-21(목)장소 :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 제3전시실2019.2.25이승민기자
한용운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 친필원고 최초 공개
한용운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 친필원고 최초 공개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00주년을 맞이하여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은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00주년 서화미술 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展을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3월 1일(금)부터 4월21일(일)까지 개최한다. 이에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은 개막에 앞서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19년 옥중에서 작성한 독립선언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친필 초고본을 언론에 최초 공개하였다. 만해 한용운선생이 1919년 7월 10일, 일본인 검사의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이 어떠한가.” 심문에 대한 답으로 옥중에서 하루 동안 꼬박 써내려간 지 딱 100년만이다. 이 날 공개 기자간담회에서는 전시 개막에 앞서 한용운의 최초 공개 유물 원본을 직접 열람하고, 이동국 수석큐레이터가 직접 원고 내용과 역사적 의미 등을 소개하는 사전 공개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정서화(正書化) 되기 이전의 초고본은 내용은 물론 글씨를 통해 쓴 사람의 정신은 물론 성정기질까지 생생히 다 그대로 녹아나오고 박혀있다.”며 “‘인간 자의식 표출’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옥중(獄中)에서 죽음을 무릎 쓰고, 그야말로 일필로 한 호흡으로 쓰여 진 만해의 친필이야말로 최정점의 예술이다.”라며 가치를 평했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또 같은 기간 수감 중에 민족대표 48명인 일부의 소회를 한용운이 받아서 남긴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시(諸位在獄中吟)’의 존재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감옥에 갇혀있던 이들 민족대표들의 옥중 소회를 살펴볼 수 있다. 이 두 유물은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3.1 독립선언 주역 옥중시 원본 *사진제공 : 예술의전당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던 1948년 8월 15일, 백범 김구가 경교장에서 남긴 칠필 유묵(한운야학 閑雲野鶴)도 언론에 최초 공개되었다. 꿈에 그리던 광복 후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남과 북이 나뉘어 사상으로 대립하던 시기, 김구는 ‘남북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였지만 끝내 통일 정부는 수립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휘몰아친 갈등과 화합, 끝내 통일 정부를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 속에서 백범은 네 글자로 그 쓸쓸한 마음을 표현했다. 한운야학 閑雲野鶴 *사진제공 : 예술의전당예술의 전당 채홍기 서예부장은 “통일정부 수립의 꿈이 한가로운 구름처럼 떠다니는 이야기가 돼버렸구나.. 이런 심정에 빠져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라고 전했다.예술의 전당 채홍기 서예부장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성을 되새김하여 정치가들과 사상가 지식인 문화인이 별개로 분파되어 있고, 남북으로 동서로 제대로 나누어진 우리의 현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2019.2.27이승민기자
<특집>
引领大陆的书法家们| 4편 이강전(李刚田) |
필락동행전
예술의 전당 서예아카데미에서 맺은 인연들이 모여 만든 필락회의 세 번째 필락동행전이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27일(수) 관람객들을 맞이하였다. 필락회는 고봉 이선경 선생께 가르침을 받으며 평생 배우는 즐거움을 신조로 삼고 함께 정진하는 회원들의 모임이다. 이 날 오픈식에는 필락회의 전시를 축하하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있었다. 학정 이돈흥탄주 고범도산하 윤종득필락동행의 회장을 맡고 있는 혜정 김금주 작가는 “이번 필락동행전을 위해 멀리서, 가까이서 많은 선생님들이 와 주셨습니다. 부끄러운 작품들이지만 많이 격려해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혜정 김금주필락동행 회원들을 지도하는 고봉 이선경선생은 “서예는 그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의 땀과 의지, 학문과 수양, 그 사람의 멋과 솜씨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하여 어렵기도 하지만 독특한 매력을 가진 예술입니다. 최고는 아닐지라도 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필락회의 발전을 기원합니다.”라고 전해 필락회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고봉 이선경선생(가운데)전시에는 정갈하고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한글 작품들부터 기본에 충실하면서 힘 있는 운필과 결구로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 속도감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행초서 작품들 등 다양한 재미와 형식의 서예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혜정 김금주 作수하 김길중 作석강 김정옥 作그 속에 담긴 회원들이 느끼는 서예에 대한 사랑과 과정의 즐거움을 함께 느끼며 나아가는 회원들의 동행이 어우러져 더욱 짙은 먹 향을 뿜는 특별한 전시이다. 필락동행전의 세 번째 전시는 3월 5일(수)까지 진행된다. 취원 이숙재 作취원 이숙재 作고봉 이선경 作<전시정보>필락동행전기간 : 2019. 2. 27(수) ~ 3. 05(화)초대 : 2019. 2. 27(수) 오후5시장소 : 경인미술관2019.2.28이승민기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전 개최
‘태탕만세(駘蕩萬歲)를 꿈꾸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태탕만세(駘蕩萬歲)를 꿈꾸다’ 전시가 오는 3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열린다. 독립운동에 힘쓴 애국 선현의 유묵을 임서한 작품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서예인들의 염원을 담은 작품 총 45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선언서(영문)의 영인본도 함께 소개된다. 전시장 전경학정 이돈흥_만해 한용운 독유(獨遊)_70x135이번 전시에는 학정 이돈흥, 담헌 전명옥, 청담 민영순 선생 등 45인의 서예인이 참여했다. 또한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세계에 알린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청암 권병덕 선생의 8폭 병풍과, 류관순 열사의 조카인 소현 류봉자 선생의 <소녀 류관순 열사의 기도문>도 포함되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담헌 전명옥_독립(獨立)_70x135전시명인 ‘태탕만세(駘蕩萬歲)를 꿈꾸다’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 中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한 구절인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春風)이 태탕(駘蕩)하여야 한다.”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여기서 ‘태탕(駘蕩)’은 봄날의 화창한 모양을 의미한다. 청담 민영순_안중근의사 동양대세사묘현 (東洋大勢思杳玄) _70x135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화창한 봄날 같은 평화가 만세토록 이어지길 바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염원을 담아 기획되었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의미와 그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과거 100년을 기억하고 미래의 100년을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학정 이돈흥 선생 휘호장면1학정 이돈흥 선생 휘호장면2지난 2월 26일(화)에는 전시 오픈을 기념하여 학정 이돈흥 선생의 휘호가 진행되었으며, 오픈식 행사는 오는 3월 8일(금) 15시에 개최된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국에서 각종 전시 및 기념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이번 은암미술관에서 개최되는 ‘태탕만세를 꿈꾸다’ 전시 역시 애국선열의 정신을 붓과 먹에 담아 표현된 작품들로 전시 작품 감상을 통해 순국선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2019. 2. 28김지수 기자 <전시정보>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전‘태탕만세(駘蕩萬歲)를 꿈꾸다’기간 : 2019. 3. 1 ~ 4. 15장소 : 은암미술관문의 : 062-226-6677(담당자 : 조아라) <참여작가>송파 이규형, 소현 류봉자, 학정 이돈흥, 성산 고재문춘당 김용운, 산민 이 용, 무전 곽영주, 시몽 황석봉취석 박원해, 목인 전종주, 금초 정광주, 남초 전진현취정 임춘식, 한천 양상철, 일속 오명섭, 비석 박익정하림 김국상, 담헌 전명옥, 다천 김종원, 토정 이흥홍청담 민영순, 호암 윤점용, 우석 박신근, 죽암 정무남중허 홍동의, 가일 유경숙, 석계 장주현, 아정 이월희도곡 홍우기, 예송 강덕원, 동우 최돈상, 고봉 이선경춘포 박지우, 탄공 박창섭, 범수 서재경, 석현 이준형신산 김성덕, 수민 김명석, 해민 박영도, 심재 오민준가원 이도영, 화우 정민규, 후산 정재석, 우경 홍순형덕암 이광호
제3회솔원서회전
한글이 먹 향을 입어 아름다운 서예작품으로 탄생하였다. 한글서예의 대가로 유명한 솔원 이윤정 선생의 지도 아래모인 솔원서회의 세 번째 전시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27일(수) 관람객들을 맞이하였다. 솔원 이윤정 作솔원회를 이끌고 있는 시온 이은상 회장은 “한 겨울의 언땅 속에서 파릇한 생명이 고요히 숨을 쉬고 있다가 봄이 시작하는 이 때 대지 곳곳에 새순으로 피어오릅니다. 한발짝 떼었던 걸음마가 어느덧 세발짝 띄게 되어 솔원회원 모두는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며 세 번째 맞는 솔원서회전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솔원 이윤정선생의 ‘성경말씀’, ‘송복의 위대한 만남 글 중에서 류성룡 시’, 시온 이은상 회장의 ‘복음송’, ‘성경’을 비롯해 총 50명의 한글 서예가 작품들이 출품되어 아름다운 한글서예의 매력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전시는 3월 5일(화)까지 진행된다.서현 김길주 作청솔 주순자 作창송 이정식 作인곡 원옥희 作<전시정보>제3회 솔원회전기간 : 2019. 2.27(수) - 3. 5(화)장소 : 인사동 경인미술관2019.2.28이승민기자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은 오는 3월 1일(금)부터 4월 21일(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展을 개최한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는 등록문화재 제664-1호로 지정된 ‘3․1 독립선언서’(보성사판)를 비롯하여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근대 인물들의 친필과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서화미술 작품들이 다수 공개된다. 벽초 선생과 제자 김용준 (1948년)김용준종이에 먹, 62×33.5cm밀알미술관 소장 총란도이하응 (흥선대원군)종이에 먹, 43.3×174.6 cm개화공정미술연구소 소장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은 “조선, 대한제국을 지나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다양한 관계 인물과 사건들을 글씨와 그림을 통해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전시의 제목이 <자화상 - 나를 보다>인 만큼 마치 자화상을 그리듯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를 서화(書畫)라는 키워드로 되돌아보며 당대 인물들의 고뇌와 열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이번 전시의 의미를 밝혔다. 묵란도(오세창 찬) (1920년대)이회영종이에 수묵, 166.5×50cm우당기념관 소장한운야학 閑雲野鶴 (1945년)김구종이에 먹, 34.5×133.5cm성베네딕도회 수도원 소장이번 전시의 이야기는 조선 말기에서 시작한다. 시․서․화(詩書畵)란 바로 그 정신이라고 여겼던 조선에서 선비의 인격과 학문은 곧 시서화로 표현되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들에게는 모두 위국의 충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글씨가 있었다. 나라를 잃고 순절한 사람들에게서는 피끓는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긴 사람들의 글씨에서는 욕망이 도사리는 그 내면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전시정보>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기간 : 2019년 3월 1일(금) ~ 4월 21일(일)장소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 전관 (실험 · 현대 Ⅰ·Ⅱ·Ⅲ 전시실)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 오후 7시) * 매주 월요일 휴관도슨트 : 매일 오후 2시, 5시(주말, 공휴일 포함)2019.3.4글씨21편집실
전시칼럼
齊白石 전시장의 잘못 찍힌 印章들박철승(서예전각인) 불과 1년 5개월 만에 한 사람을 위한 두 차례의 전시회가 열렸다. 그것도 국내 서예계에서는 대관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아우성치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말이다. 2회 전시 기간이 모두 두 달씩을 넘겼으니, 가히 세계적인 작가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서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의 서울전 이야기이다.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 왠지 낯선 것 하나가 있다. 치바이스라는 이름이다. 서예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여러 자료를 통해 접한 이 대가(大家)의 명성은 제백석이라는 우리 한자음으로 발음해야 더 걸맞게 다가오는 거 같다. ‘오창석(吳昌碩, 1844~1927)과 제백석’이라고 해야 중국의 현대 서화를 연 대칭점의 그 위상이 충분히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예단은 아닐 것이다.그런 어마어마한 전시회이니 서화와 전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기쁜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았고, 안복(眼福)을 누렸을 것이 분명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두 번의 전시작들 속에 이상한 작품들이 각각 1점씩이 있었다. 나는 작품을 관람할 때 찍힌 인장을 세심히 살피는 편이다. 글씨나 그림이야 도록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지만, 인영(印影)은 그렇지를 못하니 휴대폰 카메라로 확대 촬영까지 해두곤 한다. 제백석(齊白石), <안득자손보지(安得子孫寶之)>, 1933년2017년 제백석의 전시 작품도 그렇게 보다가 인장의 위아래가 바뀌어 잘못 찍힌 작품이 눈에 띄었다. 며칠 뒤에 모바일 매체인 글씨21에 성인근 편집주간이 쓴 ‘변관유감(邊款有感)’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제백석의 <安得子孫寶之> 전각 작품을 소개했다. 오른쪽부터 새길 수 있게 인고(印稿)를 올려야 하는데, 잘못해서 왼쪽부터 올려 새겼다. 그 이유가 측실(側室)에 대한 병 걱정 때문이며, 바로잡아 다시 새길 생각은 없노라고 측관(側款)에 밝혔다. 작가의 자존심이 이 정도인데, 한 작품을 완성하고 곁들인 날인(捺印)이 아차 잘못해 위아래가 바뀐 실수 정도야 대수롭지 않다고 나도 함께 공감하면서 그때는 그냥 넘겨 버렸었다.그런데 2018년 전시작에서도 인장이 잘못 찍힌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제백석 본인의 작품이 아니고 조각가 우웨이산(吳爲山, 1962~현재)이 제백석을 그리고 관지(款識)를 썼는데, 거기에 찍은 인장이 위아래가 바뀐 것이었다. 집에 와서 도록을 한참 쳐다봤고, 2017년 도록까지 다시 꺼내어 보면서는 두 작품과 관계되는 여러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전각이 ‘조충소기(彫蟲所技)’ 하찮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방촌(方寸)에 우주를 경영한다고 하지를 않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몇 날을 답을 찾아 여러 자료들 속을 헤매었다. 물론 잘못 찍힌 두 작품의 인영은 내 휴대폰에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우웨이산(吳爲山), <화가 치바이스> 낙관 부분, 2012년 조소에 사의(寫意) 정신을 끌어들인 우웨이산이 예술 정신의 본보기로 삼는다는 제백석에 대한 존경과 찬사를 쓰고, 그 옆에 위아래로 바짝 붙여 찍은 두 개의 인영이 보인다. 위의 것이 먼저 찍은 것이다. 그런데 실수로 위아래를 바꾸어서 잘못 찍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우웨이산도 찍으면서 아차 싶었나 보다. 당시의 불안한 심정이 누른 각도와 인주의 흔적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바로 아래에 잇대어서 올바르게 찍기는 했는데, 흔들리고 희미해져버린 붉은색은 당시의 난감함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하다.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정정한 셈이다. <二適後人>이라는 인문의 내용도 궁금했다. ‘후인(後人)’이야 알겠는데, ‘이적(二適)’은 또 뭘까? 우웨이산과 관련한 인터넷 자료를 뒤졌다. 고이적(高二適, 1903~1977)이었다. 그는 1960년대 곽말약(郭沫若, 1892~1978)과 난정서(蘭亭敍)의 진위에 대해 논변을 벌였던 것으로 유명한 학자형 서예가이다. 우웨이산은 그의 후손인 것이다. 제백석(齊白石), <여년안득자손현(餘年安得子孫賢)>, 1940년 2017년 제백석의 전시 도록에 실린 글씨 작품이다. 반절지 크기에 행서(行書)로 본문 두 줄을 썼는데 ‘得’을 고자(古字)로 고른 것 말고는 평범한 자형(字形)을 택해 붓에 먹을 두 번 정도 찍어 자연스럽게 본문을 써 내렸다. 이어서 두 줄로 관지(款識)를 적었는데 본문에 비해 약간 크다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는 편안하게 붓을 놀려 부드러운 듯 굳센 힘이 느껴지며 먹의 윤갈(潤渴)이 글자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듯 여유로운 긴장이 이어지는데, 끝까지 오면 세 군데 내려 긋는 획과 ‘安’에서 ‘得’으로 이어지는 왼쪽 긴 획에서 애절하게 긴 여운이 느껴진다. 오른쪽 한 줄의 관지는 좁은 공간에 끼워 넣은 듯 왼쪽에 비해 많이 작고 딱딱해 어색하며, 나중에 썼다는 느낌이 금방 들어온다. 이런 검은색 글씨들 사이에 붉은색 인장이 4개가 찍혀 있다. 이 중에 하나가 위아래가 바뀐 채 날인되었다. 어느 것인지 전체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본 작품 부분은 ‘餘年安得子孫賢’(늙어서 어찌해야 자손들을 어질고 착하게 할 수 있을까?) 이라는 본문에, ‘白石老人書于古燕京 行年八十’(백석 노인이 옛 연경에서 썼고 나이 팔십이다.)의 관지가 붙어 있다. 본문에는 팔십 먹은 늙은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담겨 있다. 이 즈음 제백석에게는 어린 자식들이 연달아 있었고, 1938년에는 일곱 번째 막내아들 량모(良末)가 태어나면서 4살 밖에 안 된 육남(六男) 량녠(良年)은 죽기도 하였다. 장성한 자식들이 낳은 손주들도 계속 태어나고 있었다. 당시 이런 제백석의 가정사를 감안하고 보면 위 작품은 더욱 짠하게 읽힌다. 그 나이에 참 대단해 하는 감탄은 사라지고, 늘그막까지 어린 자식과 손주들이 착하게 잘 자라주기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 든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의 좌절과 기대가 교차되어 가슴이 아려진다. 제백석은 아들 여섯에, 딸 여섯을 낳았다고 『백석노인자술(白石老人自述)』에서 밝혔는데, 여기에는 대만으로 건너간 딸 량리엔(良憐)은 이름조차 밝히지를 않았다. 둘째 부인인 후바오주(胡寶珠, 1902~1943)는 마흔두 살에 딸을 난산하다 세상을 떠났고, 그 딸 또한 태어나자마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쪽 추기(追記)에는 ‘己卯春三月一日書七幅 此幅良止收又記’(기묘년 봄 3월 1일에 일곱 폭을 썼는데, 이 폭은 양지가 수장해서 또 기록한다.)라고 적었다. 제백석은 말년에 자신의 작품들에 많은 관지를 덧대어서 작품에 대한 추가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했는데, 이옹(李邕, 674~746)의 녹산사비(麓山寺碑)에서 느낄 수 있는 각이 지고 마른 듯 딱딱한 필체가 거의 대부분이다. 제백석은 나이를 관지에 많이 적었다. 그는 1864년 1월 1일에 태어났다. 이것은 양력이고, 음력으로는 1863년 11월 22일이다. 그래서 태어난 해가 2살이 된다. 그렇다면 80세는 원래 1942년이다. 그런데 75세 되던 1937년에 액땜을 위한 점쟁이의 점괘를 받아들여 두 살을 올려 77세로 작품에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위 작품을 쓴 80세는 1940년(임오)이다. 기묘년(1939)과 맞지 않는다. 나이 탓일까? 본인이 기억의 오락가락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처음 이 문구로 7장을 썼고, 그중 한 장을 딸 치량즈(齊良止, 1931년 생)가 소장하고 있어 나중에 또 적었다 했으니, 제백석의 나이 아흔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량즈는 다른 형제 다섯과 함께 아버지를 이어받아 화가의 길을 걸어 소위 ‘제파(齊派)’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이 작품에는 4개의 인장이 찍혀 있다. 두인(頭印)으로 <悔烏堂>이라는 주문(朱文) 당호인(堂號印)을, 본문 관지 밑에 정방형의 백문(白文) 성명인인 <齊璜之印>을 찍었다. 오른쪽 추기 밑에 음각(陰刻)의 별호인(別號印) <齊大>가, 오른쪽 맨 아래에는 양각(陽刻)의 <湖南省博物館藏品章>이라는 수장인(收藏印)이 찍혀 있다. 4개 중에 잘못 찍힌 것은 <제대(齊大)>인데, ‘제대비우(齊大非耦)’에서 따온 것으로 제백석이 본가 소생의 장남이며 ‘순(純)’자 항렬의 맏이이기에 지은 별호(別號)이다. 제백석(齊白石), <여년안득자손현(餘年安得子孫賢)> 낙관 부분, 1940년 ‘제대비우(齊大非耦)’라는 고사 성어는 춘추 좌씨전에 그 내력이 실려 있는데, 춘추 초기 제(齊) 나라는 강국이었으나 북융(北戎)의 침입이 잦자 희공(僖公)은 이웃 정(鄭)나라에 도움을 청하였고, 태자 홀(忽)이 적장을 사로잡는 등 전공을 세웠다. 이에 희공이 사위로 맞으려 하자 홀이 “제나라는 대국이라 짝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거부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제백석은 <齊大>를 음각과 양각으로 여러 벌 새겨 많은 작품에 날인하였으며 여기 찍은 음각은 70세 때 다시 새겼다[白石山翁七十歲重刊]는 측관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위쪽보다 아래쪽이 여백이 많아 안정적이며, 오른쪽이 상대적으로 왼쪽보다 높아 율동감이 느껴진다. 자간(字間)은 한 몸처럼 바짝 붙이고, 세로획 7개는 굵기와 길이와 방향이 서로 제각각 놓여 자연스런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이 인장을 위아래를 바꾸어 잘못 찍었다. 제백석은 작품을 제작하고 나중에 관리하는 부분까지 매우 철저하고 주도면밀하였다. 어떤 전각 작품의 측관에는 그 문구를 몇 번째 새겼다는 것까지 기록하였다. 그런 치밀한 성격에도 이런 실수를 하였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잘못 찍힌 부분들 유심히 들여다봐도 실수의 당혹감 같은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나는 각을 새길 때 글씨 쓰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 붓이 한 번 간 곳은 다시 개칠하지 않듯이, 각을 할 때도 칼이 한 번 지나간 곳은 절대로 칼을 다시 대지 않는다.”라는 자술(自述)의 언급처럼,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자존심 때문에 이런 실수 정도는 그냥 눈 감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아무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한 모습이다. 만약 내가 이런 실수를 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제백석처럼 그냥 놓아두었을까? 아니면 우웨이산처럼 하였을까?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새 종이를 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린다.